18.09.06 읽음

리안 모리아티 씀

마시멜로

15.03.20

 

언젠가 책광고를 보고 한번쯤 읽어보고 싶었던 책.

한동안 사놓고 불편하다고 멀리했던 크레마 그랑데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동안 한번쯤 읽어봐야겠다 흥미위주로 생각했던 책을 접할 수는 없을까 희망을 가졌었다. 안타깝게도 회사에서 지원하는 이북 도서관에는 그런 문학계열 책들이 거의 없었지만, 그나마 있었던 몇 안 되는 책이 이거였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보다 오랜시간 내가 읽기의 즐거움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자기계발서나 인문 전문서적이 아니라 그냥 재밌겠다! 하고 정보습득을 위한 주의깊음 없이 술술술 읽을 수 있는 책에 대한 즐거움 말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그동안은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 시시껄렁한 문학작품은 굳이 읽을 필요없어! 하고 멀리했다는 거지... 읽으면서 뭐랄까 그냥 아무것도 아닌 날 보리수 아래서 문득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즐거움이라는 걸 깨닫게 해줬다는 데서 이 책은 내 기억 어느곳엔가 계속 남아있을 것 같다.

 

책광고에서는 어느 평범한 주부가 남편이 남긴 '내가 죽은 뒤 열어볼 것'이라고 쓴 편지를 발견하고 일어나는 사건에 포인트를 두고 있는데, (이때 남편은 멀쩡히 살아있다) 그것은 '결혼생활 내내 실은 와이프 대신 잊지 못한 첫사랑을 사랑하고 있었나?' 싶었던 내 빈약한 상상력보다는 한 단계 더 나아간 살인에 대한 고백이었다.

 

요즘 같은 현대사회에서는 잘 상상이 되지 않는 몇십 년 동안 한 마을에서 살아가며 이웃들의 사정을 훤히 하는 타운에서의 사건...이라는 것이 정말 미국엔 이런 마을이 아직도 있나 싶긴 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세 명의 연관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여주인공들을 번갈아가며 비춰주며, 각각으로 나눠져 있던 이야기의 줄기를 하나로 모아가는 과정은 재미있었다. 초반에 전혀 갈피를 잡지 못했던 상황에서 왜 이런 자잘한 이야기로 질질 끌지 하는 스토리 분량이 제법 많았던 감이 있지만, 다시 읽어보면 나름 암시나 배경을 생생하게 느끼는 데 영향을 주는 밑밥인 것 같고.

 

전혀 인과관계 같진 않지만 어떻게 되면 되돌려 받은 것 같기도 하고, 분노하고 화내야 할 상황에서 이런저런 상황이 얽혀 돌아가며 누구도 탓할 수 없는 그런 애매한 상황전개... 그냥 재미있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막판의 한 장짜리 반전도 그렇고.

(요 정도로만 애매하게 언급해놔야 나중에 책 내용이 생각이 안 나서 다시 읽겠지.)

 

책 읽다가 기억에 남는 문구가 있어서 적어본다.

십 대였던 딸을 잃고 가슴에 큰 구멍이 뚫린 할머니 레이첼의 이야기다.

 

사람들은 보통 비극을 겪은 사람은 자동적으로 훨씬 높고 고상한 차원으로 올라간다고 믿지만, 레이첼이 보기엔 그 반대였다. 비극은 사람을 옹졸하고 편협하게 만든다. 위대한 지식이나 영감을 주는 일 따윈 없다. 레이첼은 인생이 제멋대로라는 사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엔 처벌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는 사람도 있고, 조그만 잘못에도 끔찍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사람도 있다.

 

Posted by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