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올해들어 결심한 것들 중 하나가 '미래를 위해 지금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말자'가 있는데, 책장도 그런 것들 중 하나다.

책 사이즈에 딱 맞는 책장에 책을 빽빽이 꽂아놓는 건 내가 학창시절부터 가져온 로망 중 하나였는데, 내가 이 얘길 할 때마다 어머니의 반응은 이거였다. '나중에 네 집에서 해.'

 

결혼하기 전에 괜한 살림살이 바꿀 생각 말고 후딱 시집이나 가라 이거였는데... 대체 내가 언제 결혼을 할 줄 알고 그러냐는 거냐고요. 내 인생에 (3D 이상의) 남자에게 흥미가 가던 시기는 한 번도 없었고, 솔직히 몇 번 만나본 과거의 구남친이라 불릴 만한 사람들도 만나면서 가슴이 두근대고 이 사람과의 미래를 그릴 수 있고 그런 건 또 아니었단 말이지. 결정적으로, 미래에 만날 '누군가' 때문에 지금의 내가 좌지우지되고 있다고 느낄 때의 기분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미묘하고 더러운 거였다.

결국 나의 행복추구권을 주장하며 책장을 주문한 것이 4월 중순. 내가 얼마나 책에 집착하는지 잘 알고 있는 부모님은 더 이상 나를 포기시킬 수 없었다 음하하.

 

렘파드 책장은 동인홈에서 몇 번 추천받은 거였는데, 다른 종류들도 있지만 사이즈며 가격이며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사실 저 책장의 존재를 안 뒤부터 난 저걸 꿈에 그렸더랬다. 그걸 n년이 지난 이제야 이루게 된 거지. (보면 알겠지만, 가격은 절대 문제가 아니다. 결심의 문제였지.)

 

책장 하나 받겠다고 월차를 쓰기는 아깝고 해서 부모님이 집에 있을 날짜를 골라서 열흘도 전에 주문을 해놨는데, 정작 그 날짜 전날이 되어서야 그날 이 근처에 배달 올 일 없으니 날짜 바꾸라고 해서 내 복장을 뒤집어놓은 일도 있고 + 기껏 물건을 받았더니 분명 8+7을 주문했는데 막상 배달온 건 7+7이어서 항의를 하려 했으나 어머니의 '나란한 사이즈가 이쁘다. 그거 배송하는 데 그 사람들이 얼마나 받는다고 교환을 하려고 하느냐'는 말에 힘입어 & 어차피 교환해도 받을 사람은 부모님인데 다시 날짜 잡아서 집에 계속 계셔달라고 하기도 죄송해서 그냥 쓰게 된 서글픈 에피소드도 있으나... 여하튼. 책장에는 만족한다. 화이트보다 월넛이 (그나마) 고급스러워 보이고 깔끔하기도 하고. 어머니는 싸구려티가 난다고 하지만 내 막눈에는 그냥 책이 딱 맞게 들어가는 게 마냥 이쁘기만 하다.

그런데 정작 책장 두 개를 바꿨더니 그 옆에 있는 책장이 너무 튀어서 사이즈에 맞춰 800짜리 DVD장을 하나 더 구매하게 된 건... 그냥 웃지요. 왜 난 한 번에 일처리를 못하고!!

 

아, 그런데 방의 책장 세 개를 죄다 저걸로 해놓았더니 과거 앨범이나 전공책 같은 커다란 책은 결국 다른 방에 꽂아둘 수밖에 없어서 그 점은 좀 아쉬웠다. 결국 저걸로 죄다 통일시키기는 힘들고 다른 책장 하나는 있어야 한단 이야기.

 

Posted by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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